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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칸토’라는 이름 아래 통칭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정의다. 벨칸토라는 기술적 틀 아래에서도, 로시니의 유쾌한 구조, 벨리니의 서정적 선율, 도니제티의 극적 전개는 각기 다른 미학과 작곡 철학을 보여준다. 이 세 작곡가는 단지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는 이유로 묶이기엔, 음악적으로 명백히 다른 감각을 구축한 세 개의 다른 축이었다.

 

 

도니제티, 벨리니, 로시니 — 벨칸토 오페라의 세가지
벨칸토 오페라의 대가 조안 서더랜드

 

로시니 

지오아키노 로시니(Gioachino Rossini)의 오페라는 수학적으로 짜인 리듬과 음악적 반복이 만들어내는 유희적 긴장감이 핵심이다. 그의 대표작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극의 흐름이 대사와 노래,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구분 없이 하나의 구조적 덩어리처럼 조립되어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로시니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로시니는 크레센도(crescendo)를 조직하는 기술에 매우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며, 단순한 선율을 점진적으로 반복하고 변형함으로써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구조를 즐겨 사용했다. 그의 콜로라투라 기법은 장식이 아닌 리듬의 동력으로 작용하며, 음표 하나하나가 기계장치처럼 정밀하게 작동한다. 그의 음악은 기쁨과 광기를 표현할 수 있으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극적 객관성이 특징이다. 즉, 청중은 극에 몰입되기보다는 연출된 음악의 유희성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관람하게 된다.

 

벨리니

빈첸초 벨리니(Vincenzo Bellini)는 벨칸토 시대 중에서도 가장 서정성과 선율 중심의 작곡가로 평가된다. 그의 음악은 전형적으로 긴 프레이즈, 느린 템포, 유려한 선율의 흐름을 특징으로 하며, 감정은 대체로 격정적이기보다는 서서히 번지는 여운의 방식으로 표현된다. 『노르마』나 『청교도』 같은 작품에서 벨리니는 극적 긴장보다는 인물 내면의 정서적 정지 상태를 더 중시했고, 따라서 그의 아리아는 대체로 한 감정을 깊게 파고드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때로는 단조롭다는 비판도 받지만, 그 안에는음악적 정결함과 감정의 깊이를 유지하는 집중력이 있다.

성악가 입장에서는 벨리니의 음악이 단순히 노래하기 쉬운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호흡의 유연성과 긴 프레이징을 견딜 수 있는 내적 집중력이 요구된다. 기교보다는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실어 나르는 프레이징 감각과 음색의 섬세함이 핵심이다.

 

도니제티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는 벨칸토 오페라의 구조적 형식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인물의 감정과 드라마를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방향으로 벨칸토를 진화시킨 작곡가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나 『사랑의 묘약』, 『돈 파스콸레』는 그가 극적 긴장과 인간 심리 묘사를 동시에 포착하는 능력을 얼마나 탁월하게 지녔는지 보여준다. 도니제티의 음악은 구조보다는 감정 흐름 중심이다. 극 안에서 인물은 소리로 생각하고, 노래로 심리를 토로한다. 그는 로시니보다 훨씬 더 극적 서사를 음악 안에 통합했고, 벨리니보다 더 다양한 감정의 층을 다뤘다. 또한 도니제티는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를 구분 없이 깊게 조명한 작곡가로, 특히 루치아나 마리아 같은 여성 주인공의 광기, 사랑, 절망을 단순한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심리적 복잡성을 담은 감정적 건축물로 발전시켰다. 음악적으로도 그의 아리아는 극 내에서의 감정 밀도와 호흡의 리듬을 동기화시키는 기술이 강하며, 따라서 성악가는 기교뿐 아니라 연기와 내면 해석 능력까지 요구받는다.

 

 

도니제티, 벨리니, 로시니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지만, 그들이 바라본 인간, 감정, 음악의 구조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다. 로시니는 음악의 구조로 유희를 만들었고, 벨리니는 감정의 결을 선율 위에 조용히 담았으며, 도니제티는 드라마의 심장으로 음악을 밀어 넣었다. 이 세 사람은 벨칸토를 기술이 아닌 감정의 미학으로 확장시킨 선구자들이며, 그 차이는 오늘날까지도 성악가와 청중에게 각기 다른 경험과 해석의 문을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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