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에서 발성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예술관과 감정 표현의 기반이 되는 본질적인 언어이다.
그리고 이 언어는 시대와 함께 변모해왔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전의 전통 유럽 성악 기법과, 현대 성악가들이 사용하는 현대적 발성 양식 사이에는 기술적, 음향적, 그리고 해석학적 관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음색과 발성의 미학 : 울림을 중심에 두는가, 투사를 중심에 두는가
전통적 성악 발성법은 음색의 깊이와 울림의 자연스러운 확산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테너 베니아미노 질리(Beniamino Gigli)는 베르디의 「La forza del destino」 중 ‘La vita è inferno’를
큰 성량 없이도 풍부한 공명과 감정의 선율 흐름을 유지하며 불렀다.
그의 소리는 무대에서 확산되는 ‘울림’에 중심을 두고, 공간과 공기의 작용을 활용한 자연스러운 음향 구조를 만든다.
반면 현대 성악가들의 발성은 음향의 직접성(directness)과 명료한 음압 중심의 설계가 특징이다.
예를 들어,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Jonas Kaufmann)은 같은 레퍼토리에서
성량과 밀도를 전면에 내세운 음향 구조를 구사한다. 그의 소리는 무대를 지배할 정도로 강력하며,
고음에서도 밀도가 유지되도록 철저하게 제어된 성대 압력과 근육 조절이 들어간다.
이러한 차이는 단지 발성 스타일의 차이가 아니라,
무대를 감싸는 소리와, 무대를 향해 투사하는 소리 사이의 미학적 선택의 차이로 볼 수 있다.
호흡의 개념 : 흐름을 따르는가, 추진력을 생성하는가
전통 유럽 발성법은 호흡을 ‘소리를 받쳐주는 흐름’으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Victoria de los Ángeles)는 「La Bohème」 중 ‘Si, mi chiamano Mimì’에서
한 음절 한 음절을 호흡의 곡선 위에 올려놓듯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그녀의 노래는 긴장감보다는 감정의 미세한 파동이 중심이며,
숨이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안고 흘러가는’ 유기적 움직임을 만든다.
이에 비해 현대 성악가들은 호흡을 추진력 있는 에너지의 원천으로 다룬다.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Diana Damrau)의 콜로라투라 아리아에서는
복근과 횡격막의 탄성 조절을 바탕으로 고속 음형을 정밀하게 분절한다.
이러한 호흡법은 고도의 근육 제어가 요구되며, 긴 아리아 안에서 일관된 압력 유지와 빠른 회복이 가능한 체력 중심의 발성 구조를 필요로 한다. 요약하자면, 전통적 발성은 호흡의 선(線)을 그리는 것,
현대 발성은 호흡으로 음을 밀고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
공명의 개념 : 체내의 울림인가, 음향의 지향성인가
전통 성악가들은 공명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체내 울림의 결과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테너 프랑코 코렐리(Franco Corelli)는 「Tosca」의 ‘E lucevan le stelle’에서
소리를 얼굴 앞쪽으로 던지기보다, 머리와 가슴 사이의 중간 공간에서 부드럽게 울리는 공명을 통해
서정성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현대 성악가들은 공명을 지향성 있는 포인트로서의 위치로 이해한다.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Renée Fleming)은 고음에서도 공명점을 정밀하게 조정하여
음이 직선적으로 전달되고, 공간에서 정확한 방향성을 갖도록 설계한다.
이는 특히 현대 무대와 녹음 환경에서 명확하고 통제된 음향 효과를 제공하는 데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전통은 공명을 안에서 키우는 울림,
현대는 공명을 밖으로 던지는 방향성 있는 소리로 본다.
감정 표현 방식 : 감정을 숨기는가, 드러내는가
전통 성악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음색과 리듬의 미묘한 변화로 감정을 ‘암시’했다.
예를 들어,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Norma」의 ‘Casta Diva’에서
감정을 절규로 표출하지 않고, 음색의 온도와 프레이징의 길이로 정서를 밀도 있게 조율했다.
반면 현대 성악가들은 감정을 외면화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을 보인다.
소프라노 소냐 욘체바(Sonya Yoncheva)는 같은 아리아에서 감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음색의 강약, 호흡의 속도, 표정의 밀도까지 극의 감정선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이처럼 감정 전달 방식은 전통은 정서를 감춘 채 전달하는 ‘은유의 언어’,
현대는 정서를 직진적으로 표현하는 ‘드라마의 언어’라는 구조로 구분할 수 있다.
발성의 변화는 예술관의 변화다
전통 유럽 성악 기법과 현대 성악 발성법의 차이는 단순한 기술적 진화가 아니다.
이는 곧, 오페라를 어떻게 이해하고,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 태도의 차이다.
전통은 공감보다는 은유, 감정의 폭발보다는 감정의 파동,
현대는 소리의 정제보다 에너지의 직진성을 중시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성악가는 두 체계를 단순히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레퍼토리와 무대 환경에 맞게 ‘선택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유연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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