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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칠리아 바르톨리 vs 엘리나 가란차

goldberg-bach 2025. 7. 4. 18:50

현대 오페라 무대에서 메조소프라노는 더 이상 소프라노의 보조적 음역이 아니다. 이제 메조소프라노는 독자적 해석력과 음악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새로운 오페라 미학을 이끌어가는 중심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 흐름의 정점에는 단연 두 명의 거장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 출신의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와 라트비아 출신의 엘리나 가란차(Elīna Garanča)다.
두 사람은 음역은 같지만, 그 음색의 결, 기교의 방식, 감정 해석의 깊이, 레퍼토리 선택의 전략에 있어서 철저히 다른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체칠리아 바르톨리 vs 엘리나 가란차
체칠리아 바르톨리, 엘리나 가란차

 

음색 : 밀도와 투명성의 대조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음색은 전통적인 메조소프라노의 어두운 색조에서 벗어나 있다.
그녀는 명확한 모음 발음과 활기찬 공명점 이동을 통해 중음역에서 유난히 밝고 탄력 있는 음색을 만들어낸다. 특히 성대의 진동 밀도가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 하나하나에 ‘거품이 있는 듯한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엘리나 가란차는 깊고 둥근 음색, 섬세하면서도 풍성한 공명감을 기반으로 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체질적으로 체스트 보이스와 헤드 보이스 사이의 연결이 매끄럽고, 고음으로 갈수록 음색의 밀도와 어두운 울림이 유지된다. 이러한 음향 특성은 로맨틱 오페라와 후기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유리하게 작용하며, 감정의 중량감을 부여하는 효과를 낳는다.

 

 

테크닉 : 기교적 정교함과 구조적 안정감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현존 성악가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콜로라투라 기교를 구사하는 메조소프라노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콜로라투라는 단순히 빠르게 움직이는 음형이 아니라, 모든 음에 언어적 명확성과 정서적 뉘앙스를 담아내는 입체적 표현이다.

그녀는 리가투라, 스카르초, 아첸투아토 등의 세부적 발성 기술을 극단적으로 세분화하여, 음악 안에 다양한 텍스처와 미세한 감정의 결을 부여한다. 특히 바로크 아리아나 벨칸토 레퍼토리에서 그녀의 기교는 거의 '현악기처럼 들리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비해 엘리나 가란차는 완벽한 발성 안정성을 바탕으로 한 기교의 소유자다. 그녀의 콜로라투라는 바르톨리처럼 화려하거나 과감하진 않지만, 음정 정확도와 호흡의 균형이 매우 뛰어나며, 감정의 과잉 없이 정제된 우아함을 보여준다.

 

곡 해석 : 극적 몰입과 심리적 통제의 차이

곡 해석에 있어서도 두 사람의 방향성은 확연히 다르다.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감정의 에너지와 연극적 몰입을 극대화하는 해석자다. 그녀는 극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동일시된 존재로 무대에 살아나며, 음악의 프레이징, 리듬, 심지어 숨소리까지 모두 인물의 심리와 일치시킨다.

특히 그녀의 바로크 레퍼토리 해석은 단순한 고증에 그치지 않고, 극적 몰입과 음악적 실험이 교차하는 새로운 해석 모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 속 ‘V'adoro, pupille’에서 그녀는 기존의 이상화된 캐릭터가 아닌 욕망과 권력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초상을 소리로 재구성한다.

반면 엘리나 가란차는 정서의 균형과 절제 속에서 인물의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연출형 해석자다. 그녀는 감정에 몰입하기보다는, 감정을 관찰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극을 설계한다. 이러한 해석 방식은 베르디나 비제의 오페라에서 강점을 발휘하며, 특히 카르멘(Carmen) 같은 복합적 인물을 고전적 우아함과 현대적 내면성으로 동시에 구현해낸다.

 

 무대 존재감 : 생동하는 배우 vs 조율된 카리스마

무대 위에서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에너지로 공간을 채우는 유형의 배우형 성악가다.
그녀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미세한 제스처와 시선 처리, 표정의 변화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녀가 무대 위에 있을 때는 단 한 순간도 시선이 흩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무대 장악력은 그녀의 음악적 해석력과 결합되어, 단지 '노래하는 가수'가 아닌, 하나의 총체적 퍼포먼스 예술가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반면 엘리나 가란차는 절제된 동작과 정제된 감정 표현으로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유형이다.
그녀는 다이내믹한 움직임보다 무대 위 고요함 속에서 강한 집중력을 발산하며, 시선의 방향과 음색의 변화만으로도 극적 전환을 이끌어낸다.

 

 서로 다른 경로로 완성된 두 메조소프라노의 정점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엘리나 가란차는 같은 음역대의 성악가이지만, 전혀 다른 미학을 구현하는 두 개의 극단적 축이라 할 수 있다.
바르톨리는 음악 안에서 연극을 창조하는 화려한 혁신자이며, 가란차는 정제된 구조 안에서 깊은 감정을 투영하는 절제의 대가다.

둘 중 누가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두 사람이 공존함으로써, 메조소프라노라는 성악 분야가 얼마나 넓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단지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예술 언어를 구축한 하나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