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순 도르마(Nessun Dorma)’는 이탈리아 오페라 『투란도트(Turandot)』의 3막에 등장하는 테너 아리아다. 그러나 이 곡은 단지 오페라 애호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성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조차, 처음 듣자마자 감동하거나 소름이 돋는 곡으로 꼽는다. 마치 전 세계의 감정 코드가 이 한 곡 안에서 통역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난다. 왜 하필 수많은 아리아 중에 ‘네순 도르마’일까? 그리고 왜 이 곡이 ‘성악의 얼굴’처럼 대표되는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노래 자체의 음악적 구조, 파바로티라는 상징적 인물, 텔레비전과 대중문화의 노출 효과, 그리고 하이 C라는 상징적 고음의 파괴력이 한데 얽혀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요소를 뛰어넘어, ‘네순 도르마’는 음악이 인간의 정서를 어떻게 단순하고도 극적으로 공명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증거이기도 하다. 이 곡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승리의 순간을 ‘소리로 확신시키는 힘’을 가진 노래다.
단순한 선율, 폭발적 감정 : ‘네순 도르마’의 음악적 마법
‘네순 도르마’는 놀라울 만큼 단순한 선율 구조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프레이즈가 디아토닉(diatonic), 즉 기본적인 음계 안에서 움직이며, 화성 진행도 매우 전통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 단순성이 극적인 고조(Climax)를 설계하기 위한 정교한 바탕으로 작동한다. 곡 전체는 내면의 고요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영웅의 결심, 기대, 확신, 승리의 외침으로 감정이 상승한다. 마지막 “Vincerò!”에서 하이 B 또는 C까지 도달하는 종결 고음은 단지 ‘높은 음’이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을 운명 위에 던지며 외치는 감정의 극점이다.
이 곡의 대중적 흡입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래식한 테크닉 없이도 멜로디만 듣고 감정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료한 서사 구조를 지니며, 가창자와 청중이 동시에 감정의 절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드라마적 포맷을 갖고 있다. 다른 테너 아리아들—예를 들어 『토스카』의 “E lucevan le stelle”나 『라 보엠』의 “Che gelida manina”—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선명하며, 승리의 쾌감을 준다. 단순한 미성보다는 감정의 절대값이 청중을 사로잡는 것이다.
파바로티와 ‘네순 도르마’—음악을 아이콘으로 만든 목소리
‘네순 도르마’가 세계적 명곡이 된 데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라는 존재를 빼놓을 수 없다. 파바로티는 이 곡을 통해 성악이라는 장르 전체를 대중에게 소개한 최초의 거장 중 한 명이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개막식에서 이 곡을 부르며 전 세계 생중계된 장면은, 단 한 번의 무대가 어떻게 오페라를 전 세계인의 감정 언어로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그의 해석은 단지 기술적 완성도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고음과 감정의 결합점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음악적 직관 덕분이었다. 그의 “Vincerò!”는 마치 성악가의 외침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승리를 선포하는 외침처럼 들렸고, 그 한 음이 전 세계의 공통 언어가 되었다. 이후 수많은 TV 예능, 영화, 광고에서 이 곡이 사용된 것도 결국 파바로티라는 인물이 만든 상징성과 감정의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다.
대중문화 속의 상징 : 왜 TV와 광고는 늘 ‘네순 도르마’를 고를까?
TV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예능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아리아는 단연 ‘네순 도르마’다. 오디션 참가자들이 이 곡을 부르는 이유는 단 하나다—단 1분 만에 “소름”을 유도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곡은 중간까지 비교적 안정적인 선율로 진행되며, 마지막 15초 안에 극적인 고음과 감정의 폭발을 배치한다. 이는 편집과 연출에 유리하며, 청중의 반응을 극대화하기에 최적화된 곡이다.
게다가 ‘네순 도르마’는 성악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성악의 ‘감정 코드’를 가장 쉽게 체험시킬 수 있는 곡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라도, 듣고 있으면 울컥한다’는 반응이 많은 이유다. 이 곡은 언어를 초월하며, 인간의 감정 시스템 안에 있는 “긴장→고조→해소”라는 구조적 쾌감을 직접 자극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클래식 음악, 특히 복잡한 리트머스 구조나 추상적 레퍼토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심리적 즉시성과 명료함을 의미한다.
‘네순 도르마’는 고음의 힘이 아니라, 감정의 보편성이다
‘네순 도르마’는 높은 음 때문에 유명해진 곡이 아니다. 파바로티 때문만도 아니다. 그리고 TV에 자주 나와서만도 아니다. 이 곡은 모든 사람 안에 있는 감정 구조를 건드릴 수 있는 드문 음악적 언어를 지니고 있다. 희망과 확신, 고요에서 절정으로 올라가는 드라마적 구조, 단순하면서도 장대한 선율, 그리고 마지막 승리의 외침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감정 곡선 위에 얹혀 있다.
성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선 장르다. 그러나 ‘네순 도르마’는 이 장르의 언어를 통역해주는 대사관처럼 작동한다. 누구든 이 노래를 통해, 음악이 주는 감정의 정점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 곡이 ‘성악의 대명사’로 불리는 진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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