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마리아 칼라스의 위대함은 목소리가 아닌, 진실이었다.

goldberg-bach 2025. 6. 27. 18:32

마리아 칼라스는 단지 뛰어난 성악가가 아니다. 그녀는 오페라라는 예술이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극임을 증명한 목소리였다. 그녀의 성대는 기교의 기계가 아니라 감정의 기관이었고, 그녀의 숨결은 음악의 정서를 넘어, 인물의 운명을 움직였다. 일반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가 고음과 기교의 정확성으로 평가받는다면, 칼라스는 한 음, 한 단어에 인간의 절망, 광기, 고뇌, 열망을 넣는 방식으로 오페라를 재정의했다. 그녀의 음색은 흔히 '불완전하다'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 담긴 진실의 울림이야말로 칼라스를 '위대한 해석자'로 만든 결정적 요소였다. 

 

불멸의 목소리 마리아 칼라스

 

〈토스카〉 – 사랑과 죽음을 압축한 목소리의 질감

칼라스의 〈토스카〉는 단지 푸치니의 음악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극 중 인물 '토스카'의 내면 그 자체를 구현한 소리였다. 그녀의 ‘Vissi d’arte(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네)’는 기술적 완성도와는 다른 차원의 감동을 준다. 음 하나하나가 드라마의 시간축과 감정선에 절묘하게 일치하며, 그녀의 비브라토는 단순한 음의 장식이 아니라 떨리는 심장의 리듬처럼 들린다. 칼라스는 토스카를 단지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인물을 신과 사랑, 권력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의 격류로 그렸다. 고음에서는 극적 텐션을 유지하면서도, 중음역에서는 놀랄 만큼 섬세한 프레이징을 통해 감정의 이완과 수축을 조절했다. 특히 ‘io venni a lui tutta doglente’와 같은 구절에서의 mezza di voce와 portamento 사용은, 음악이 아닌 인물의 호흡처럼 들리는 수준으로 구현된다. 칼라스의 토스카는 노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연기이며, 소리로 구현된 내면극이다.

 

 〈노르마〉 – 여신과 인간 사이의 음향적 균열

벨리니의 〈노르마〉는 모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에게 가장 높은 산이지만, 칼라스에게는 그것이 극적 고지였다. 그녀는 이 역할을 통해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여신과 인간 사이의 갈등을 목소리로 표현했다. 아리아 ‘Casta Diva’에서 칼라스는 숨과 소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유영하는 음색을 통해, 신성한 제사장의 기도를 노래한다. 이 장면에서 그녀의 음색은 투명하지도,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공기처럼 흐르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울림을 가진다. 그녀는 성대에서 만들어지는 음파가 아니라, 인물의 믿음과 고뇌가 만든 진동을 들려준다. 콜로라투라의 빠른 패시지에서도 그녀는 절대로 기계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감정이 앞서고, 기교는 그 감정의 파형을 따라간다. 그녀가 “Ah! bello a me ritorna”를 부를 때, 듣는 이는 단지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파괴 사이에서 흔들리는 노르마의 내면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칼라스의 〈노르마〉는 단순히 위대한 성악이 아니라, 오페라의 본질—소리와 연기의 결합—을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다.

 

 

〈라 트라비아타〉 – 목소리로 해석한 비올레타의 죽음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비올레타 역은 극 중 시간의 흐름과 감정의 파고를 따라 목소리 자체가 변화해야 하는 역할이다. 칼라스는 이 변화 과정을 놀라운 방식으로 구현했다. 1막에서는 그녀는 다소 밝고 부유한 리릭톤을 사용해, 비올레타의 사교성과 자기연민을 표현한다. 그러나 ‘Ah, fors’è lui’에 이르러선 이미 감정의 지층이 깔리기 시작하며, ‘Sempre libera’에서는 자기기만적인 광기가 그녀의 트릴과 피아노 발성 사이에서 미묘하게 진동한다. 2막에서는 중음역을 중심으로 한 보다 인간적이고 체념적인 프레이징이 드러나며, 특히 ‘Dite alla giovine’에선 숨결이 무너질 듯 이어지는 레가토가 비올레타의 절망을 직조한다. 칼라스는 이 아리아를 부를 때 문장 단위의 감정 연기를 넘어, 단어 하나하나에 연기적 표정을 담아낸다. 3막의 ‘Addio del passato’에서는 음의 안정감보다, 의도된 불완전함으로 비올레타의 죽음을 앞둔 몸의 쇠약함을 표현한다. 그녀는 죽는 여인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순간을 살아낸 것이다. 이 해석력은 기술이 아니라, 예술적 본능이다.

 

 칼라스의 위대함은 성대가 아니라, 진실한 감정의 전달에 있다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때때로 불안정하고 거칠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불완전함조차 감정의 일부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음색은 단순히 ‘소리’가 아닌, ‘의미’와 ‘감정’을 담은 도구였고, 모든 프레이징은 심리적 진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칼라스는 오페라가 단순한 음악극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내면을 드러내는 극적 문법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해석자였다. 그녀는 한 음을 부를 때, 그 음이 극 중 인물에게 왜 필요한지, 어떤 감정을 반영하는지를 철저히 고민했다. 그래서 그녀의 아리아는 기술이 아닌 정서의 흐름이고, 그녀의 무대는 재현이 아닌 현존하는 드라마였다. 〈토스카〉, 〈노르마〉, 〈라 트라비아타〉에서 칼라스는 성악가가 아닌 배우로서의 소프라노, 예술가로서의 여성, 그리고 목소리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창조자였다. 그녀가 위대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한 음, 한 숨, 한 단어로 진실을 전하려는 투쟁의 흔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