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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페라는 인간 감정의 정수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하지만 지난 30년 동안 오페라계는 화려한 무대만큼이나 숱한 논란과 사건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세계적인 거장들의 돌발 행동, 정치적 입장, 그리고 무대 뒤의 갈등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기고 예술의 경계를 시험했다. 특히 디지털과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과거보다 빠르게 논란이 퍼지고,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1. 로베르토 알라냐 : 라 스칼라 <아이다> 도중 퇴장 사건 (2006)
2006년 12월,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오페라계에 오래도록 남을 논란을 남겼다.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는 <아이다> 공연 중 대표 아리아 ‘청춘의 불꽃’을 부른 후 일부 관객으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이탈리아 오페라 관객들은 전통적으로 가수를 향한 박수와 야유를 솔직하게 표현하지만, 알라냐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격분한 표정으로 무대에서 걸어나가 버렸고, 예정된 장면에 나타나지 않았다. 극장 측은 대기 중이던 대체 테너 안토니오 폴라스타를 급히 투입했는데, 폴라스타는 연습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야 했다. 이 사건은 다음 날 이탈리아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고, 알라냐는 기자회견에서 “라 스칼라 관객은 마피아 카르텔처럼 무례하다”라고 말해 기름을 부었다. 이 일은 오페라계의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2. 안젤라 게오르규 : 서울 <토스카> 공연 ‘노쇼’ 파문 (2012)
2012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된 <토스카> 공연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의 돌발 행동으로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공연 당일, 게오르규는 호텔에서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주최 측은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라고 발표했지만, 현장에서는 “공기 질과 스태프와의 마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주최 측은 급히 대체 소프라노를 투입했으나, 수많은 관객이 실망을 금치 못했다. 티켓 환불 요청이 폭주했고, 국내 언론은 “디바의 갑질인가, 정당한 항의인가?”라는 제목으로 연일 보도했다. 게오르규는 나중에 “계약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비판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3. 플라시도 도밍고 : 성추문 논란 (2019)
2019년, 테너이자 지휘자인 플라시도 도밍고는 미국 언론의 폭로로 성추문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여 명의 여성들이 “도밍고가 수십 년에 걸쳐 부적절한 접근을 해왔다”고 주장했고, 일부는 “거절 시 경력에 위협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이 폭로로 인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LA 오페라는 그의 공연을 전면 취소했다. 도밍고는 “모든 관계는 합의된 것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유럽 일부 극장은 그의 복귀를 허용했으나, 미국 무대는 사실상 떠나게 되었다.
4. 빅토리오 그리골로 : 일본 공연 중 성추행 논란 (2019)
테너 빅토리오 그리골로는 2019년 일본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의 커튼콜 중 돌발 행동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무대 위에서 여성 합창단원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만지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목격되었고, 해당 장면은 온라인에 빠르게 퍼졌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즉각 그리골로의 모든 공연을 취소했다. 그리골로는 “의도치 않은 장난이 오해를 불렀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주요 극장 무대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엄격한 잣대가 지나치다”는 옹호와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5. 안나 네트렙코 : 푸틴 지지 논란과 공연 보이콧 (2022~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는 과거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 및 정치적 발언으로 서방 사회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다.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의 주요 극장들은 그녀의 공연을 잇따라 취소했다.
네트렙코는 “나는 전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성명을 냈지만, 서구 언론과 평단은 이를 진정성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 팬들은 “예술과 정치의 분리”를 주장했지만, 네트렙코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6. 로베르토 알라냐와 안젤라 게오르규 : 이혼 후 갈등 (2013)
1996년 결혼해 ‘오페라계의 슈퍼커플’로 불린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별거와 재결합을 반복하다가, 2013년 공식 이혼했다. 이들은 이후 서로에 대한 날 선 비난을 언론을 통해 주고받았다. 게오르규는 “알라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라고 지적했고, 알라냐는 “게오르규는 예술보다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했다”고 반격했다. 팬들은 두 사람의 무대 복귀를 바랐으나, 당사자들은 “함께 공연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7. 안젤라 게오르규 : 서울 <토스카> 테너 앙코르중 무대 난입 사건 (2024)
2024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토스카> 공연은 뜻밖의 돌발 상황으로 국제적 화제를 모았다. 3막에서 한국 테너가 부른 ‘별은 빛나건만’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폭발적인 박수와 함께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 테너는 관객의 열정에 화답하며 같은 아리아를 한 번 더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는 무대 뒤에서 갑자기 걸어 나와 테너의 노래 도중 난입했다. 그녀는 “전체 공연의 흐름을 깨뜨린다”며 테너를 제지하려 했고, 짧지만 팽팽한 긴장이 무대 위에 흐렸다. 테너는 당황한 표정으로 노래를 마무리했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찬반이 엇갈렸다. 일부는 “게오르규의 예술적 완벽주의”라고 옹호했고, 다른 이들은 “관객과의 소통을 가로막은 오만함”이라며 비판했다.
8. 유시프 에이바조프 : 실력 논란과 ‘네트렙코 후광’ 의혹 (2015~현재)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는 2015년 안나 네트렙코와 결혼한 이후 라 스칼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주요 배역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그의 빠른 성공은 “네트렙코 후광 덕분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왔다. 2016년 라 스칼라 <투란도트>에서의 칼라프 역은 특히 비판이 많았다. 몇몇 공연에서 불안정한 고음 처리와 발음 문제로 혹평이 이어졌고, 이탈리아 언론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쉽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에이바조프는 “나는 내 실력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팬들은 지금도 그의 실력을 두고 찬반양론을 벌이고 있다. 현재 둘은 이혼한 상태이다.
9. 요나스 카우프만 : 잦은 공연 취소로 빚어진 논란 (2010~현재)
독일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은 세계 최정상급 테너로 군림했지만, 잦은 공연 취소로 ‘카우프만 복불복’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로 팬들의 원성을 샀다. 2014년 빈 슈타츠오퍼의 <라보엠>과 <카르멘> 연속 취소는 큰 논란이 되었다. 해외 팬들은 호텔과 항공권을 날리고 분노했다. 카우프만은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무대에 설 수 없다”고 해명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최근 들어 그는 건강관리에 집중하며 취소율을 낮추려 노력하고 있다.
10. 체칠리아 바르톨리 : ‘디바’ 태도 논란 (2003~현재)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는 벨칸토 레퍼토리의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그녀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종종 극장 측과 갈등을 빚었다. 2003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라 체네렌톨라> 공연을 준비하던 중, 무대 디자인과 지휘자 선정을 두고 극장과 의견 충돌이 생기자 돌연 출연을 취소했다. 당시 언론은 “디바의 고집인가, 예술적 신념인가?”라는 논쟁을 벌였다. 2011년 파리 오페라 <라 클레멘차 디 티토> 리허설에서도 바르톨리는 지휘자의 템포 운영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공연 직전 하차했다. 일부는 그녀를 “예술적 완벽주의자”라고 옹호했으나, 다른 이들은 “협업을 저해하는 태도”라며 비판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독창회와 음반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결론
지난 30년간 오페라계는 화려한 무대만큼이나 크고 작은 스캔들로 요동쳤다. 이 사건들은 스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것인지, 예술가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디지털 시대의 관객은 이제 음악뿐 아니라 예술가의 태도와 가치관까지 주목하고 있다. 오페라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롭게 자신을 정의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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