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안나 네트렙코, 완벽하지 않은 목소리로 완전한 최고 디바가 되다

goldberg-bach 2025. 6. 30. 23:32

성악의 세계에서 ‘완벽한 목소리’는 이상이지만, 진정한 디바가 되기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하다. 기술적 완성도 외에, 감정의 폭발력, 무대 위 존재감, 그리고 에너지와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객의 심장을 흔들 수 없다. 안나 네트렙코는 “완벽하지 않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오페라 무대의 중심에 우뚝 선 이유를 바로 이 지점에서 증명해낸 예외적 존재다.

그녀의 목소리는 때로 거칠고, 고음에서는 다소 무리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그녀의 표현력 안에서는 ‘생생한 인간미’로 받아들여진다. 네트렙코는 단순히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불꽃처럼 자신의 에너지 전체를 무대에 투하한다.

 

안나 네트렙코, 완벽하지 않은 목소리로 완전한 최고 디바가 되다
에프게니 오네긴 중 편지의 아리아를 부르는 안나 네트렙코(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불안정한 감정까지도 소리로 전달한 용기

네트렙코가 <La Traviata>에서 보여준 비올레타는 단순히 소프라노가 노래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그녀는 음 하나하나에 심리적 동요를 불어넣었고, 콜로라투라의 정교함보다는 감정의 진폭을 택했다. 특히 “Sempre libera”에서 그녀는 화려한 고음을 무기로 삼기보다는, 절박하고 방황하는 여인의 속마음을 거침없이 노출했다. 그것은 기술적 ‘정확성’보다는 표현에 대한 열정이었다.

 

<루살카> – 고요 속에 흐르는 뜨거운 내면

<루살카>의 “Song to the Moon”은 정적인 아리아로 보이지만, 네트렙코는 그 안에 강력한 내면의 에너지를 담았다. 음을 끌어올릴 때의 호흡, 미세한 다이내믹 조절, 그리고 가슴에서 올라오는 울림은 그녀가 단순히 이 곡을 ‘소리’로만 표현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그녀는 관객의 숨소리마저 잠재우는 집중력을 발휘하며, 달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진심으로 전달했다.

 

 

<예브게니 오네긴> – ‘편지의 아리아’에서 드러난 진짜 내면의 연기력

<예브게니 오네긴> 중 타티아나가 부르는 ‘편지의 아리아’는 러시아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서정적인 장면이다. 안나 네트렙코는 이 아리아에서 단순한 러브송 이상의 감정 복합체를 표현해낸다. 그녀는 이 곡을 통해 순수한 소녀의 감정, 처음으로 겪는 사랑의 두려움과 고백의 떨림을 ‘성악적 기교’보다는 ‘숨결과 음색의 밀도’로 그려냈다. 특히 저음에서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긴장감이, 고음으로 갈수록 점점 개방되는 감정의 홍수가 소리로 전달된다. 네트렙코는 이 아리아에서 단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써 내려가는 감정을 하나하나 음에 녹여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타티아나의 마음속을 ‘읽게’ 만든다. 그녀의 연기는 제스처나 움직임보다도 음 하나하나의 미세한 다이내믹과 떨림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는 기존의 오페라 연기를 뛰어넘는 섬세함과 몰입의 증거였다.

 

 

<맥베스> – 무대를 집어삼킨 야망의 화신

<Macbeth>는 네트렙코가 기존 리릭-스핀토에서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확장하며, 전례 없이 강한 에너지를 폭발시킨 대표작이다. “La luce langue”에서 그녀는 무대를 단순히 ‘연기’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 전체를 장악했다. 그녀의 시선, 걸음, 그리고 음의 강약 하나하나가 모두 정제된 폭력성처럼 느껴졌다. 이 무대에서 안나 네트렙코는 ‘가창력’ 이전에, 불길처럼 퍼지는 에너지로 무대를 지배했다.

 

 

<아이다> – 목소리로 만드는 전쟁과 사랑의 서사

<아이다>에서 네트렙코는 에티오피아 공주의 고통과 인간적 갈등을 동시에 끌어안았다. “Ritorna vincitor!”는 그 자체로 드라마인데, 네트렙코는 한 소절 안에서도 두 개의 감정이 충돌하는 방식으로 해석했다. 곡 중반부에서 폭발하는 감정은 그녀의 몸 전체에서 일어나는 진동처럼 느껴졌고, 음 하나하나에 배어든 ‘감정의 무게’는 단순한 고음을 넘어선 감정 연기의 결정체였다.

 

 

안나 네트렙코의 ‘무대 위 에너지’는 어떻게 특별한가?

많은 성악가들이 훌륭한 목소리를 갖고 있다. 하지만 네트렙코는 단 한 번의 등장만으로도 공간의 온도를 바꿔버리는 에너지를 지녔다. 그녀는 소리를 통해 장면을 구성하며, 청중을 무대 속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기존의 디바들이 정제된 기교와 형식미에 집중했다면, 네트렙코는 감정의 거친 표면까지도 드러내며 인간적인 디바로 자리매김했다.

그녀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낸다'. 소프라노가 아니라 주인공 그 자체로 존재하는 그녀의 무대는, 어떤 기술보다 강력한 진실성으로 관객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완벽보다 강한 힘, ‘몰입하는 에너지’

안나 네트렙코는 테크닉적인 부분에서 타 성악가들과 견줄 때 반드시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 몸, 감정, 에너지 모든 것을 무대에 던지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오페라는 ‘연주’가 아니라 ‘삶’이고, 그 무대 위에서 그녀는 매번 완전히 소모된다.

이처럼 네트렙코는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소프라노가 아니다. 그녀는 소리로 연기하고, 에너지로 무대를 채우는 진정한 디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