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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성악도들의 국제적 경쟁력과 과제 – 유럽·미국 학생들과의 차이점은?

goldberg-bach 2025. 6. 30. 15:42

전통적으로 노래를 잘한다는 평을 받아온 한국인 성악도들은 이제 국제 무대에서도 더 이상 ‘도전자’의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세계 유수의 성악 콩쿠르에서 꾸준히 수상하며 강력한 경쟁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오페랄리아, BBC 카디프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는 한국인 성악가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유럽의 오페라 극장에서도 한국인 이름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한국인 성악도를 이렇게 두각 나타내게 만든 걸까? 동시에, 여전히 유럽 혹은 미국 출신 성악도들과 비교했을 때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한국인 성악도들의 국제적 경쟁력과 과제
이태리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

 

1. 한국인 성악도의 주요 특징: 놀라운 기술력과 집중력

한국인 성악도들은 대부분 이른 시기부터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는다. 음악 입시를 목표로 한 철저한 훈련, 성악 전공 준비 과정에서의 발성, 이론, 악기 병행 교육은 이들에게 탄탄한 기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한국 성악 교육은 이탈리아 벨칸토 기법을 기반으로 한 발성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고음의 안정성, 명확한 아티큘레이션, 정확한 음정 처리 등의 면에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는다.

또한, 한국 학생들의 집중력과 반복 훈련에 대한 인내심은 탁월하다. 성악이라는 장르가 단기간의 성과보다는 오랜 시간 반복과 훈련을 요구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한국인 특유의 ‘끈기’는 국제무대에서 큰 장점이 된다. 실제로 오페라 극장의 코치진 사이에서는 한국인 학생이 주어진 음악을 빨리 익히고 정확하게 재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다.

 

2. 유럽·미국 성악도와의 차이점: 언어와 해석력에서 오는 간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성악도들이 국제무대에서 유럽 혹은 미국 성악도들과 비교하여 약점을 드러내는 부분도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언어 습득력과 리브레토(오페라 대본)의 해석력이다.

유럽 성악도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언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어가 일상 생활에서도 활용되는 환경에서는 리브레토의 내용이 단순한 문장이 아닌, ‘문맥’으로 이해된다. 반면, 한국인 성악도들은 이러한 언어적 감각을 후천적으로 익혀야 하며, 그 결과 음악적 표현에서의 뉘앙스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컨대, 독일 가곡인 리트(Lied)를 해석할 때, 단어와 단어 사이의 함축된 의미나 시적 구조에 대한 해석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유럽과 미국의 성악도들은 대체로 표현의 자유로움, 개성의 표출에서 뛰어난 경향을 보인다. 반면 한국인 성악도들은 정확성 위주의 훈련에 익숙하다 보니, 자유로운 음악적 해석이나 무대 위에서의 즉흥적인 표현력에 있어서 다소 제한적일 수 있다. 물론 이는 개인차가 있으나, 구조적인 교육 환경에서 오는 차이점이기도 하다.

 

3. 한국 성악 교육의 구조적 장점과 개선 방향

한국의 성악 교육은 고등학교–대학교–해외 유학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루틴이 정착되어 있다. 이는 정형화된 훈련과 경로 제공이라는 측면에서는 안정적이지만, 예술적 다양성이나 자율적인 표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많은 학생들이 해외 유학을 결심하게 되는 시점에서 ‘기술력은 충분하나, 언어와 문화적 표현력에서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국내 성악 교육 과정에서부터 언어 중심의 수업 강화, 오페라 극장 실습 확대, 연기 및 무대 경험 제공 등의 보완이 필요하다.

특히, 이제는 성악가에게도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 제작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한국인 성악도들이 자신의 실력을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갖춘다면, 이는 또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4. “기술력에서 표현력으로”의 도약 필요

한국인 성악도들은 더 이상 ‘잠재력 있는 참가자’가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있는 당당한 주역이다. 그들이 가진 탄탄한 기술력과 훈련된 집중력은 분명 세계 정상급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술을 넘어, 언어적 감각, 표현의 자유로움, 문화적 이해력까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예술은 단순히 ‘정확한 소리’의 축적이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한국인 성악도가 ‘기술’에 더해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앞으로도 세계 무대를 이끄는 진정한 아티스트로 거듭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