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파바로티 목소리의 비밀

goldberg-bach 2025. 6. 27. 14:34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살아 있는 순간마다 ‘숨’을 연구했던 사람이다. 그가 평생 강조했던 단어는 단 하나, “호흡(breath)”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호흡은 단순히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날 수 있게 만드는 ‘엔진’이다.” 실제로 그는 많은 마스터클래스에서 학생들에게 발성보다 먼저 “어떻게 숨을 쉬느냐”를 물었고, 그것이 목소리의 90%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파바로티는 특히 ‘앗포지오(Appoggio)’, 즉 횡격막 지지 호흡법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이 방법은 단순히 배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숨을 내쉬되 숨을 멈춘 듯 유지하는 미묘한 긴장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그것을 “공기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고, 이 상태가 유지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벨칸토 발성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파바로티는 “숨을 충분히 들이마시고, 그 숨을 손에 쥔 것처럼 소중히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철학은 그의 모든 노래, 특히 푸치니나 베르디의 긴 프레이즈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문가들이 본 파바로티의 호흡 메커니즘: 이탈리아식 '앗포지오'의 정수

성악 전문가들이 파바로티의 호흡법을 분석할 때 가장 주목하는 점은, 그의 앗포지오(Appoggio)가 극도로 안정적이면서도 유연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악에서의 호흡은 하복부 중심의 횡격막 조절, 즉 복식호흡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파바로티의 방식은 그 이상이다. 그는 들숨 시 늑간근(intercostal muscles)과 복횡근(transverse abdominis)을 함께 활용해, 가슴이 부풀지 않도록 철저히 아래로만 숨을 유도했다. 그리고 내쉴 때는 숨을 ‘빼내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에 가깝게 조절했다. 이러한 조절 능력 덕분에 파바로티는 어떤 극적인 고음에서도 숨이 흔들리지 않았고, 긴 프레이즈에서도 프레이징이 깨지지 않는 연속성과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고음을 낼 때에도 목에 힘을 전혀 주지 않고, 성대 위로 올라온 공기 기둥을 입천장으로 ‘올려 보내는’ 듯한 공명 처리(resonanza di maschera)를 구사했다. 이 고도의 호흡 제어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몸 전체가 악기가 되는 훈련의 결과였다.

 

 

파바로티의 '목소리 만들기' – 소리를 쌓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

파바로티는 자서전과 다큐멘터리에서 “목소리는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목소리란 성대 그 자체의 울림이 아니라, 공명과 호흡, 감정이 만나는 접점에서 태어나는 유기체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소리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울리는 것’으로 배웠다고 회상한다. 파바로티는 발성 연습에서 늘  두성(head voice)과 흉성(chest voice)의 균형을 중시했고, 음의 전환대(빠사지오 passaggio)에서 불필요한 힘을 배제하고 자연스러운 연결감을 유지하는 ‘리치오코론도(lisciocorondo)’ 스타일을 선호했다. 목소리를 ‘쌓는다’는 것이 아니라, ‘열린 채로 존재하게 한다’는 접근 방식은 곡 해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어떤 아리아도 음정을 먼저 따지지 않고, 호흡과 감정의 흐름을 먼저 체화한 뒤, 그 위에 음정을 얹는 방식으로 연습했다. 그의 ‘Vincerò!’는 단지 고음이 아니라, 숨의 흐름과 감정이 동시에 정점에 도달하는 순간의 물리적 결과였다.

 

 

오페라 애호가가 듣는 파바로티의 호흡 : 보이지 않는 예술

청중은 파바로티의 호흡을 직접 ‘보진’ 못하지만, 그의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그것은 고음이 뻗을 때 흔들림 없는 기반이 있다는 신뢰감, 즉 숨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감각 때문이다. 파바로티는 ‘숨을 쉴 틈이 없는 노래’도 결코 거칠게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의 레가토는 프레이즈 간에 공기가 끊긴다는 느낌 없이 이어지고, 아리아의 고조에서조차 숨이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이런 이유로 오페라 애호가들은 그를 ‘목소리로 건축하는 조각가’라고 부른다. 그의 숨은 하나의 선율을 통째로 조각하는 무형의 도구이며, 그 숨결 속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단순한 기교 이상의 예술적 결과를 낳는다. 특히 『토스카』의 “E lucevan le stelle”나 『리골레토』의 “La donna è mobile” 같은 아리아에서, 그는 감정을 과잉하지 않으면서도 최대의 표현력을 확보한다. 청중은 결국 파바로티의 고음보다 그 고음을 떠받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호흡의 예술에 감동하는 것이다.

 

 


파바로티가 남긴 숨결의 유산 : 성악은 소리의 기술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호흡이다.

파바로티는 단지 위대한 테너가 아니라, ‘호흡을 예술로 끌어올린 성악가’였다. 그의 방법은 인위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가 강조한 것은 자연스러움, 지속성, 감정과 연결된 숨의 흐름이었다. 그는 “성악가는 먼저 좋은 숨을 쉴 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반복했다. 이 철학은 오늘날에도 많은 성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현대적 테크닉으로 변형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오페라 팬들 역시 파바로티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단순한 ‘하이 C’가 아닌 한 인간의 호흡이 만들어낸 극적 존재감에 감동하게 된다. 성악은 단지 목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호흡과 감정이 만나는 순간의 기적’임을 그는 자신의 몸으로 증명했다. 그가 남긴 노래에는 여전히 숨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그 숨결은 지금도 세계 곳곳의 무대 위에서, 학생들의 연습실 안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귀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