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발탁한 5명의 여성 성악가와 그들의 매력 분석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제왕이라 불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탁월한 음악성, 무대 카리스마, 그리고 독보적인 음색을 지닌 여성 성악가들을 발탁해 세계무대에 올려놓았다. 그는 단순한 지휘자가 아니라 성악가의 가능성을 꿰뚫어 보는 선구자였으며, 그의 선택은 오늘날까지도 전설처럼 회자된다. 이 글에서는 안나 토모아 신토우, 아그네스 발차, 군둘라 야노비츠, 캐슬린 배틀, 조수미라는 다섯 명의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1. 안나 토모아 신토우 (Anna Tomowa‑Sintow)
카라얀이 “지난 수십 년간 내가 만난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라 명명한 인물이다. 불가리아 출신의 토모아 신토우는 카라얀의 총애를 받으며 1970~80년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오페라 무대를 장악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도 크리미한 리릭 소프라노로, 고전주의의 투명함과 낭만주의의 서정성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카라얀은 토모아 신토우의 목소리를 “공기처럼 자연스럽고, 관객의 내면 깊숙이 스며드는 음향”이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녀는 슈트라우스의 ‘아라벨라’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섬세한 선율 처리와 탁월한 딕션으로 극찬을 받았다. 토모아 신토우는 카라얀의 요구에 따라 스튜디오 녹음에서도 흔들림 없는 호흡과 음색을 유지해, 카라얀이 추구하던 완벽한 레코딩 사운드를 실현시킨 몇 안 되는 성악가 중 한 명이다.
2. 아그네스 발차 (Agnes Baltsa)
카라얀이 특히 사랑한 메조소프라노 중 한 명으로, 강렬한 무대 존재감과 폭발적인 감정 전달력으로 유명했다. 그리스 출신의 발차는 풍부한 중저음과 힘 있는 고음의 대비로 청중을 압도하며, 로시니와 비제 레퍼토리에서 확고한 위치를 점했다. 카라얀은 발차를 두고 “그녀는 한 소절 한 소절에 생명을 불어넣는 가수”라고 말했으며, 그녀의 카르멘 해석은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명연으로 꼽힌다. 그는 특히 발차의 음색이 “메조소프라노의 어두운 빛깔과 소프라노의 광휘가 교차하는 경계선”에 있다고 평가했다. 발차는 카라얀의 까다로운 음악적 해석을 빠르게 이해하고, 본인만의 드라마틱한 해석으로 녹여내어 녹음과 공연 모두에서 깊은 신뢰를 얻었다.
3. 군둘라 야노비츠 (Gundula Janowitz)
카라얀이 모차르트와 브람스의 목소리라 부른 오스트리아 리릭 소프라노이다. 야노비츠의 목소리는 순수함의 결정체로 묘사되며, 특히 고음에서의 빛나는 울림과 노랫결의 유연함은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카라얀은 그녀를 향해 “야노비츠의 음성은 영혼의 거울과 같다”고 평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카라얀과 함께한 ‘마술피리’의 파미나 역은 야노비츠의 투명하고 청초한 음색이 오케스트라와 완벽히 어우러진 명연이었다. 그녀는 극적이기보다는 내면의 서정을 강조하는 스타일로, 카라얀이 선호한 정제되고 균형 잡힌 해석에 최적이었다.
4. 캐슬린 배틀 (Kathleen Battle)
미국 출신의 소프라노 캐슬린 배틀은 맑고 순수한 음색과 완벽한 기교로 카라얀의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 카라얀은 그녀를 베를린 필하모닉의 레퀴엠과 미사 프로젝트에 발탁하며, “배틀의 목소리는 거룩한 빛과 같다”고 극찬했다. 특히 배틀의 빠르고 정확한 스타카토, 고음에서의 투명한 울림은 관객뿐 아니라 지휘자조차 감탄하게 만들었다. 카라얀은 그녀의 음성을 “천사와 같은 순수함과 인간적 감정의 진폭을 동시에 가진 목소리”라고 표현하며, 그녀가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공간의 공기가 달라진다”고까지 말했다.
5. 조수미 (Sumi Jo)
카라얀이 발탁한 동양 성악가 중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조수미이다. 한국 출신의 그녀는 탁월한 콜로라투라 테크닉과 맑은 음색으로 카라얀의 눈에 띄었다. 1987년경 카라얀은 “조수미는 마치 숨결로 노래하는 것처럼 자연스럽다”고 언급했다. 조수미의 목소리는 극고음에서도 흔들림 없는 안정성과 크리스털처럼 투명한 음색이 특징이다. 카라얀은 그녀가 가진 기술적 완벽성과 무대 위의 빛나는 카리스마를 높이 평가했고, “조수미는 내가 만든 소리의 궁극적 결을 완성할 재능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라얀의 선택 기준과 다섯 성악가의 공통점
카라얀이 이 다섯 명의 여성 성악가를 발탁한 이유는 단순히 뛰어난 가창력 때문만이 아니다. 맑고 투명한 음색은 카라얀의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고, 탁월한 테크닉은 스튜디오와 무대 모두에서 요구되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노래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모두 카라얀이 강조한 “음악적 감성과 표현의 진정성”을 겸비한 예술가였다. 카라얀은 이 성악가들과 함께 20세기 클래식의 황금기를 장식했고, 오늘날까지도 이들의 녹음은 모범적 해석의 표본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