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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vs. 줄리어드 음악원

goldberg-bach 2025. 7. 10. 09:42

성악 교육은 단순한 노래 기술 습득이 아니라, 언어, 문화, 발성 철학, 음악 미학이 통합된 예술적 훈련 과정이다. 그리고 이 훈련이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전통 위에서 이루어지는가는 성악가의 목소리에 깊은 영향을 남긴다. 이탈리아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국립 음악원(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과 미국 뉴욕의 줄리어드 음악원(The Juilliard School)은 세계적인 성악 교육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발성과 교육 방향은 단순한 지리적 차이를 넘어선 철학의 대조를 보여준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vs. 줄리어드 음악원
뉴욕의 줄리어드 음악원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은 이탈리아 성악 전통의 가장 깊은 뿌리를 지닌 기관 중 하나로, 교육의 중심은 벨칸토 발성법을 기반으로 한 ‘자연스러운 울림’과 ‘말하듯이 노래하는 것’에 있다. 여기서 성악가는 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호흡의 흐름을 따라 언어와 감정을 실어 나르는 유기적인 소리의 흐름을 배운다. 후두의 안정, 모음의 명료함, 공명의 균형은 기술로서가 아니라 이탈리아어 발음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악적 구조로 접근된다. 예를 들어 발성 트레이닝은 노래 자체보다도 낭독, 억양, 시의 리듬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학생은 가사에 어울리는 발음과 소리의 위치를 찾아가며 발성과 언어의 일치를 훈련한다. 이 교육 방식에서는 고음 훈련도 단순히 성대를 밀어붙여 소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숨의 곡선’ 위에 음을 띄우는 감각을 중시한다. ‘벨칸토’는 결국 '아름다운 노래'라는 의미이지만, 산타 체칠리아의 교육 철학은 아름다움이란 기교가 아니라 자연과 언어, 감정의 조화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확신에 기반한다. 따라서 성악가는 무대에서 자신의 몸을 악기로 조율하면서, 극적 강조보다 언어의 선율성과 감정의 유려함을 중심에 두는 예술가로 성장한다.

 

 

반면 줄리어드 음악원은 미국식 실용성과 시스템 중심의 교육 철학을 반영한 대표적인 기관이다. 이곳에서 성악 교육은 기술의 정확성과 무대 적응력을 동시에 갖춘 ‘완성형 전문 예술가’를 양성하는 데 초점을 둔다. 줄리어드의 성악 교육은 초기부터 발성을 체계적으로 세분화하여 지도하며, 학생은 자신의 성대 구조, 후두 위치, 횡격막 호흡, 공명 통로를 해부학적 용어로 이해하고 제어하는 훈련을 받는다. 이는 이론 중심이 아니라, 오히려 고도로 실용화된 예술적 장인 정신에 가깝다. 줄리어드에서는 개개인의 신체 구조와 목소리 상태에 따라 발성 문제가 정밀하게 진단되고, 개별 에크서사이즈를 통해 특정 부위의 긴장이나 오류를 수정한다. 이 과정에서 성악가는 자기 발성의 메커니즘을 자각하고 수정할 수 있는 능동적 훈련자로 자라난다. 또한 미국식 교육은 연기, 무대 동작, 언어 발음, 현대 오페라 해석까지 실제 프로 무대에서 요구되는 모든 역량을 포괄하며, 줄리어드는 이 모든 훈련을 통합된 시스템으로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줄리어드 발성 교육의 또 하나의 축은 언어적 유연성이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여러 언어를 각기 다른 발음과 억양으로 소화하면서도, 음색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훈련은 줄리어드에서 매우 중시되는 항목이다. 이로 인해 줄리어드 출신 성악가는 국제 무대에서 레퍼토리 전환 능력과 무대 적응성에서 강점을 가진다.

 

 

두 기관의 교육은 서로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방향은 성악가의 목적에 따라 선택의 문제다. 산타 체칠리아는 정통 이탈리아 발성을 통해 '언어와 감정의 일체화'를 추구하며, 학생은 몸을 음악으로 느끼는 법을 배운다. 줄리어드는 기술적 정밀성과 다문화 무대에 적합한 유연성을 기반으로, 학생을 빠르게 실전 무대에 투입 가능한 예술가로 육성한다. 즉, 산타 체칠리아는 목소리의 자연성과 시적 울림을 중심에 둔 전통 중심의 교육, 줄리어드는 기술적 통제와 기능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현대 중심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