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아그네스 발차 : 정제된 미학 vs 생의 격류
메조 소프라노라는 음역은 단순히 소리의 높낮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 내면의 질감, 감정의 무게, 그리고 서사와 정념이 뒤엉킨 소리의 지층이다. 이 지층 위에서, 두 명의 거장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건축을 시도했다.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 그녀는 마치 오래된 악보의 먼지를 털어내는 고고학자처럼, 음악의 숨결을 되살려내는 성악가였다. 반면 아그네스 발차(Agnes Baltsa)는 불타는 무대 위에서 살을 찢고 피를 흘리는 전사처럼, 감정이라는 날것의 에너지를 한 치의 주저 없이 뿜어냈다. 이 디바의 목소리는, 같은 음역대라는 우산 아래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별개의 우주였다. 이 글은 그 둘의 세계를 천천히 걸으며, 음색, 창법, 표현의 결을 따라 소리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작은 시도다.
체칠리아 바르톨리 : 소리로 쓴 미세한 필사본, 고음악의 시인
체칠리아 바르톨리의 목소리는 종이처럼 가볍고, 비단처럼 유연하며, 때로는 수묵화의 먹물처럼 번져간다. 그녀가 한 음절을 내뱉을 때,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음악 안에 감춰진 문법을 열어젖히는 열쇠처럼 느껴진다. 바르톨리는 고전과 바로크, 잊힌 작곡가의 잔영을 추적하며, 오래된 프레이징에 숨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그녀의 콜로라투라는 물방울이 연못에 떨어지는듯 정교하고, 그녀의 레가토는 구름이 하늘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매끄럽다. 강한 성량을 내세우기보다는, 한 줌의 호흡과 한 줄기의 미세한 소리로 청중의 심장을 건드리는 법을 아는 성악가다. 그녀가 부른 모차르트의 아리아는 기교를 위한 기교가 아니라, 말과 선율이 맞닿는 경계에서 조심스레 피어나는 음악적 묵상에 가깝다. 바르톨리는 자신을 무대 위의 주인공이라기보다, 작품의 사서(史書)처럼 여기며,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아그네스 발차 : 불꽃처럼 치솟는 정념, 무대 위의 생명력
아그네스 발차는 바르톨리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존재한다. 그녀는 말보다 더 빠르게 뛰는 감정, 의식보다 먼저 반응하는 심장의 박동을 음악으로 풀어내는 예술가다. 그녀의 음성은 매끄럽기보다는 거칠고 단단하며, 그 안에는 날것의 생명력과 두려움 없는 분출이 있다. 발차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녀는 무대가 되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극적 진실을 던진다. 그녀의 카르멘은 관능을 넘어, 사랑과 파멸이 공존하는 여성의 실존이었고, 그녀의 아말리야는 눈물로 조각된 대리석 조각 같았다. 그녀는 소리 하나에 인물의 내면 전체를 싣는다. 강약의 조절은 그녀에게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맥박이 지시하는 대로 흐르는 자연이다. 그녀의 디크션은 거칠게 들릴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언어가 아닌 본능으로 움직이는 무대 동물의 직관이 담겨 있다. 그녀는 항상 넘친다. 그러나 그 넘침은 한 편의 비극처럼 아름답다.
소리의 두 철학 : 정제된 미학 vs. 생의 격류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아그네스 발차, 이 두 사람은 단지 다른 창법을 지닌 성악가가 아니다. 그들은 각각 하나의 철학, 하나의 미학, 하나의 인간 이해 방식을 보여준다. 바르톨리는 질서의 아름다움과 언어의 섬세함을 믿는 음악의 문장가였다. 그녀의 음악은 항상 정돈되어 있고, 통제되어 있으며, 계산된 우아함 속에서 자유롭게 흐른다. 반면 발차는 질서보다 혼돈을, 계산보다 직감을 따랐다. 그녀의 노래는 한 번 불이 붙으면 끝까지 타오르는 등불 같았고, 청중은 그 불꽃에 타오르거나, 전율하거나, 무너졌다. 바르톨리는 청중에게 '이해'를 선물했고, 발차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전자는 마음의 안쪽을 조용히 두드렸고, 후자는 가슴의 바깥을 뜨겁게 때렸다. 이처럼 같은 음역대에서도, 인간은 얼마나 다양한 소리의 문장을 쓸 수 있는가. 메조소프라노는 단지 소리의 범위가 아니라, 해석의 스펙트럼인 셈이다.
노래는 기술이 아닌 존재다 : 두 여성이 남긴 흔적
바르톨리와 발차는 각각의 방식으로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성악은 과연 소리의 기술인가, 존재의 발현인가? 바르톨리는 섬세한 발음, 절제된 음색, 고전적 품격으로 대답했다. 그녀는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한다. 발차는 강렬한 감정, 넘치는 음량, 거친 텍스처로 반문했다. 그녀는 울부짖듯 노래하고, 칼처럼 목소리를 휘두른다. 이 두 사람은 결국, 성악이란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임을 증명한 예술가다. 소리가 어떻게 말보다 강력할 수 있는지, 어떻게 공기 중에 울려 퍼진 진동 하나가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는지를, 그들은 몸으로 증명했다.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 더 이상 무대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음반 속에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그리고 음악이라는 예술이 향해야 할 미래의 길목에도 그들의 흔적은 남아 있다.
그것은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