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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대 디바 3인 : 줄리아 레즈네바, 리셋 오로페사, 리사 다비드센

goldberg-bach 2025. 7. 8. 15:42

21세기 오페라 무대에는 더 이상 하나의 ‘이상적인 성악가 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각 성악가는 자신이 중심을 두는 시대, 음역, 레퍼토리, 음악 해석의 방향에 따라 철저히 개별화된 예술 언어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 가운데 줄리아 레즈네바, 리셋 오로페사, 리사 다비드센은 서로 완전히 다른 색채를 지니면서도,
공통적으로 기교, 음악성, 해석력에서 현대적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신세대 디바들이다.
이 세 명은 단순히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자신만의 시대 감각과 음악 철학을 실현하는 예술가로서
지금의 오페라계를 이끄는 상징적 인물들이다.

 

줄리아 레즈네바, 리셋 오로페사, 리사 다비드센

 

줄리아 레즈네바는 러시아 출신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주로 바로크 및 고전 초기 레퍼토리에 강점을 보인다.
그녀의 음악성은 고음악적 정밀함과 직관적인 감성 해석이 동시에 작동하는 희귀한 균형을 이룬다.
레즈네바는 극적인 성량이나 육체적 카리스마보다는, 정제된 장식과 고음의 리듬 처리 능력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그녀의 음색은 맑고 투명하며, 마치 현악기의 플래젤렛처럼 공간을 부유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정의 결이 정교하게 짜여 있다. 특히 헨델이나 비발디 같은 레퍼토리에서,
그녀는 고음의 장식음마다 미세한 다이내믹을 적용하며, 음표 자체에 감정의 표정을 입히는 능력을 지닌다.

 

 

반면 리셋 오로페사는 미국 출신으로, 벨칸토와 모차르트 레퍼토리에서 세계적 명성을 쌓고 있는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다.
오로페사의 음악성은 극 안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해석하고, 그 흐름 안에서 감정의 고조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그녀는 특히 템포 루바토나 프레이징에서 너무 감정을 과잉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오로페사는 복잡한 심리 상태를 ‘잘게 나뉜 감정 단위’로 해체하여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청자의 몰입을 논리적으로 끌어당긴다. 목소리는 고르고 따뜻하며,특히 중음역의 탄력성과 고음에서의 안정된 음색 통일이 그녀의 가장 큰 강점이다. 기교 면에서도 트릴과 아르페지오가 과잉되지 않고, 음악 안에서 기능적으로 작동하도록 계산된 세련됨이 돋보인다.

 

 

리사 다비드센은 노르웨이 출신의 스핀토 소프라노로, 리히아르트 슈트라우스와 바그너 레퍼토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극성악가다.
다비드센의 음악성은 소리의 대지 위에 감정을 쌓아가는 중량 중심의 구조적 접근이 특징이다.
그녀는 극의 해석에 있어 단순한 감정의 표현보다는, 인물의 내면적 진화를 설계된 건축물처럼 축조하는 방식을 취한다.
「엘렉트라」나 「지그프리트」와 같은 레퍼토리에서는, 그녀의 목소리가 단지 고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극의 구조와 함께 하모닉 에너지의 축처럼 작용한다. 목소리는 메조역 중음역에서도 충분히 무게가 실리며,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성량뿐만 아니라 배음의 밀도가 유지되는 특이한 음향적 특성을 지닌다. 그녀는 극의 정점을 미리 드러내지 않고, 전체적인 긴장 곡선을 끌어가는 내구성 있는 연기를 기반으로 음악을 해석한다.

 

 

세 사람은 단지 음역대나 출신 국가만 다른 것이 아니라, 음악을 다루는 철학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레즈네바는 한 음 한 음을 조각하듯 정제하며, 감정보다는 음향적 감수성 중심의 해석을 구사한다.
오로페사는 곡 전체를 흐름으로 바라보며, 심리와 음악의 서사 구조를 논리적으로 결합하는 해석자다.
다비드센은 자신을 극 전체의 중심 구조로 삼아, 음악을 물리적 힘과 감정의 건축으로 설계하는 예술가에 가깝다.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각각은 자신이 소화하는 레퍼토리의 시대, 작곡가의 미학, 무대 환경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발성 방식과 해석 전략, 무대 존재감을 구축하고 있다. 줄리아 레즈네바가 바로크 오페라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장식적 기교를 시처럼 펼쳐낸다면, 리셋 오로페사는 극의 감정 라인을 명료하게 꿰뚫는 섬세한 설계자이며,
리사 다비드센은 대형 서사 구조 안에서 감정의 밀도를 밀리미터 단위로 조절하는 성악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