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로크 오페라는 따로 노래해야 하는가?
고음악 성악가가 존재하는 발성의 이유
음악사에서 성악가는 항상 시대의 악기와 극의 성격, 미학적 기조에 따라 목소리를 달리 요구받아왔다.
바로크 오페라, 특히 헨델, 비발디, 몬테베르디 등의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발성 미학과 기술 체계를 필요로 하며,
이것은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가 구축한 낭만주의 대오케스트라 기반 오페라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오늘날 오페라 세계에서는 ‘고음악 성악가(early music specialists)’와 ‘후기 낭만 오페라 성악가(spinto, dramatic, verismo singers)’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 근본 원인은 목소리 자체의 사용법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크 오페라는 ‘성량’보다 ‘운율과 색채’를 중심에 둔다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는 오늘날처럼 수십 명의 관현악단과 거대한 공연장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
그 시기의 극장은 작았고, 오케스트라 편성도 현악 중심의 소규모 구조였으며,
악기 음량도 현대 악기보다 훨씬 작고 부드러웠다.
이러한 조건에서 성악가의 목소리는 공간을 밀어붙이는 에너지보다는, 음의 섬세한 조율과 레토릭(말의 감정화)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바로크 성악가는 고음의 지속적인 ‘강한 발성’보다는 음 사이의 장식(ornamentation), 트릴, 아르페지오, 액센트의 미세 조절, 말과 음악의 융합된 억양 처리에 특화되어야 했다. 바로크 음악은 ‘소리의 파워’가 아니라 ‘소리의 조형’에 가까운 예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로크 성악가는 성량보다 음색의 정교함과 기술적 유연성에 특화된 목소리를 지녀야 하며,
이는 낭만주의 오페라의 성악과 뚜렷이 구분된다.
낭만주의 오페라는 ‘에너지와 질량 중심의 성악’을 요구한다
베르디, 푸치니, 바그너의 오페라는 오케스트라의 질량감이 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를 지닌다.
예컨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케스트라 음향만으로도 청중을 몰입시키는 드라마를 구성하며,
성악가는 그 음향 벽을 뚫고 자신의 목소리를 투사해야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성악가는 더 넓은 공명 공간, 더 두터운 성대 접촉, 더 긴 호흡과 고압의 지탱력, 더 많은 육체적 에너지
를 필요로 한다. 이 발성 구조는 결국 체력과 발성 근육의 구조 자체가 다른 목소리를 요구하게 되며,
바로크의 정제되고 투명한 발성과는 반대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다.
발성의 설계도 자체가 다르다
현대에서 바로크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소화하는 성악가들은 대체로 후두의 위치를 상대적으로 높게 유지하며, 성대 접촉을 최소화한 공명 중심 발성을 구사한다. 이들은 “말하듯 노래하는” 음색을 구현하며, 과도한 성량이나 음압보다, 가사 전달력과 프레이징 유연성에 집중한다.
반면 낭만주의 오페라 성악가들은 후두를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하며, 공기를 성대에 강하게 밀착시켜 밀도 높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를 지닌다. 이 두 방식은 기술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 한 사람이 두 체계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은, 피아니스트가 동시에 하프시코드와 파이프오르간 연주법을 구분 없이 섞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장식과 프레이징의 개념이 다르다
바로크 오페라의 핵심은 다 카포 아리아다.
이는 하나의 아리아를 반복하면서 가수가 즉흥적으로 장식을 추가해 감정을 다양화하는 구조다.
이런 형식에서는 음 하나하나의 미세한 흔들림, 숨결의 강약, 장식음의 선택이 모두 가수의 해석력과 테크닉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예술적 설계가 된다. 반면 베르디나 푸치니의 아리아는 이미 악보에 극적 감정의 고저가 구조적으로 포함되어 있으며,
즉흥적 장식보다는 강한 프레이징과 강세 중심의 호흡 구조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베르디를 부르던 성악가가 바로크 아리아를 부르면 소리가 너무 무겁거나 느리고 장식이 둔해 보일 수 있고,
반대로 바로크 성악가가 푸치니를 부르면 성량이 부족하거나 긴장감이 약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발성은 음악의 시대정신에 반응한다
바로크 오페라는 균형, 언어의 운율, 신체의 유연성을 예술의 핵심으로 삼았고, 낭만주의 오페라는 비극적 열정, 정서의 파열, 극적 에너지를 음악의 중심에 뒀다. 발성법은 그 시대의 미학을 반영하는 도구이며, 따라서 바로크와 낭만 오페라가 다르다면,
그 음악을 구현하는 성악가의 목소리도 자연히 분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소리는 곧 시대의 악기다
바로크 오페라가 ‘따로’ 노래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유행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작곡 방식, 공연 환경, 언어 운율, 음악 철학 전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바로크 전문 성악가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미학과 기술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는 목소리의 구조와 감각이 따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감정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공명기이며, 각 시대는 그 공명기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