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는 음 하나하나에 ‘조각’을 새겼고, 칼라스는 음 하나하나에 ‘상처’를 남겼다.
성악 예술에서 소프라노는 단순한 음역대를 넘어서, 오페라의 감정과 서사를 주도하는 중심축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악기가 바로 인간의 목소리이며, 그중에서도 극한의 테크닉과 표현력을 요구받는 것이 소프라노다.
소프라노의 역사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시대와 국적,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명의 예술가가 존재한다. 바로 20세기 중반 오페라계의 전설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와, 1990년대 벨칸토 레퍼토리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조수미(Sumi Jo)"이다.
이 두 사람은 목소리의 톤, 연기력, 레퍼토리 선택, 무대 장악력 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며, 각각 자신만의 미학적 기준을 제시해왔다. 이 글은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 발성 기법, 해석력, 무대 예술성 등을 종합해보면, 단순한 우열이 아닌 예술성의 스펙트럼이 다를 뿐이다.
조수미 – 벨칸토 테크닉의 완성자, 정밀한 미학의 소유자
조수미는 한국 출신 최초의 세계적 디바로, 벨칸토 테크닉의 정교한 구현으로 국제 오페라계에 이름을 남겼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고 순수한 음색, 완벽한 인토네이션, 그리고 "탁월한 아질리티" 와 납작하지 않고 동글동글한 목소리이면서도 아주 정확한 아티큘레이션의 구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높은 음역에서의 안정성은 동시대 어떤 소프라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조수미의 예술적 핵심은 완벽주의적 접근에 있다. 그녀는 벨리니, 도니체티,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보이는 초고난도 아리아를 정밀한 음정과 리듬, 정확한 레가토로 처리한다. 예컨대,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 조수미는 “Il dolce suono” 아리아를 한 치의 흔들림 없이 미세한 다이내믹 조절로 풀어낸다. 이는 마치 기계적으로 정확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의 농도가 짙은 연기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조수미는 무대에서의 시각적 디테일과 연기 표현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그녀의 무대는 언제나 절제와 조화 속에서 감정이 조형된다. 특히 그녀가 자주 다루는 벨칸토 오페라에서는 과장된 연기보다 음악 자체로 감정을 전달하는 미학을 실현한다. 이런 점에서 조수미는 ‘극적 장인’이라기보다는 ‘음악의 정밀 공예가’에 가깝다. 그녀는 이탈리아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최우수 졸업하며 정통 유럽식 훈련을 거쳤고,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리차드 보닝 같은 대지휘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유럽 오페라계 중심부에서 실력을 검증받았다. 그녀의 레코딩은 기술적 완벽성과 함께 소리의 조형미를 지닌, '정제된 예술'이라 불릴 수 있다.
마리아 칼라스 – 극적 해석의 천재, 목소리로 연기를 하다
반면 마리아 칼라스는 음악사에서 가장 강렬한 오페라 해석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예술성은 단지 ‘노래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페라를 연극적 예술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음성 하나하나에는 극적 텐션, 감정의 분출, 인간 내면의 격렬함이 실려 있었다. 칼라스는 드라마틱 소프라노에서 콜로라투라까지 아우르는 넓은 레퍼토리를 갖추고 있었다. 특히 푸치니의 《토스카》, 벨리니의 《노르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서 보여준 비극적 히로인의 내면 표현은 그녀만의 해석으로 남아 있다. 그녀가 부른 《노르마》의 “Casta Diva”는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청중의 감정을 압도하는 드라마적 감수성으로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칼라스는 목소리 자체를 연기 도구로 삼은 최초의 디바였다. 그녀는 노래와 연기의 경계를 무너뜨렸으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불안정한 음색을 선택해 캐릭터의 심리를 극대화했다. 마치 스크린 속의 여배우가 감정을 쏟아내듯, 그녀는 무대 위에서 실제로 인물 자체가 되어 살아갔다. 또한, 칼라스는 작품 전체를 해석하는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단순히 아리아 한 곡이 아닌, 오페라의 서사 구조와 감정선, 인물의 동기까지 읽어낸 후, 이를 목소리로 구체화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녀의 해석은 종종 ‘거칠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은 정형화된 기술보다 인간적인 결함을 예술로 끌어올리는 힘이었다.
예술성의 스펙트럼 – 완벽성과 감정, 두 개의 정점
조수미와 마리아 칼라스는 예술성의 방향이 완전히 다르다. 조수미는 완벽한 테크닉과 정교함의 미학, 칼라스는 파격적 감정 표현과 해석 중심의 미학을 구현했다. 조수미는 기술의 극한에서 ‘음악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칼라스는 음악을 도구 삼아 인간 드라마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으로 활용했다.
조수미의 벨칸토는 순수함과 절제의 미학이며, 칼라스의 드라마틱 소프라노는 혼란과 치열함의 미학이다. 조수미는 음 하나하나에 ‘조각’을 새겼고, 칼라스는 음 하나하나에 ‘상처’를 남겼다. 이 둘은 기술과 감성, 완벽함과 결함, 구조와 파열이라는 두 극단의 경계에서 소프라노 예술의 스펙트럼을 완성한 셈이다.
결국 예술이란 ‘무엇이 더 우월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진실하게 감동을 전달하는가’의 문제다. 조수미는 그 섬세함으로, 칼라스는 그 광기로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청중의 기억 속에 예술로 남아 있다.